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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여운

고양이와 나(2)-"야! 이거 치워!!"

          

고양이와 나(1)-"고양이 데려가도 돼요?"

<고양이를 처음 실내에 들이기까지의 사정은, 첫째 다소와 동거 11년째 되던 날 남긴 글에 한번 쓴 적이 있어 그것으로 대신합니다. 그 글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주소 클릭>

http://babohj.tistory.com/entry/고양이-데려가도-돼요

         

고양이와 나(2)-"야 이거 치워"

 

난 가족들과 떨어져 고학하며 살아가는 동안 성격이 조금은 까칠하게 변해갔던 듯하다.

스스로 나 자신을 다독인다고 다독였지만, 그 까칠함은 불쑥불쑥 튀어나와서 주변인들을 힘들게 했던 모양이다.

조카가 내게로 와서 대학을 다니게 되었을 때, 조금은 염려를 했다. 혼자 살아온 시간이 너무 오래여서 누군가와 다시 함께 지낸다는 게 겁이 나기도 했다. 내 까칠한 성격 때문에 조카가 힘들어하진 않을까...

조카가 왔을 때, 그래도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이라고 생각한 세 가지를 말했다. 그 나머지 것들은 내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째, 자고 일어나면 침대 위 이불을 반듯하게 펴 놓을 것.

둘째, 욕실을 쓰고 나면 거울의 물기를 말끔하게 닦아놓을 것.

셋째, 양말은 벗는 즉시 세탁 바구니에 넣을 것.

내 조카는 성격이 참 쿨하고 무던한 편이다. 그렇게 쿨하고 무던한 성격은 생활에서도 드러나는 법. 뭘 먹다가 부스러기 같은 게 떨어져도 그냥 쿨~하게 지나간다. 그러니 위 세 가지도 제대로 지켜질 리가 없었다. 몇 번 지적을 하기도 했지만, 잔소리를 오래 하진 않았던 듯하다. 그냥 내가 치우곤 했다.

그런데.. 조카가 3년이 넘게 나와 살다가, 군대 가기 전...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이모는 결혼하면 상대가 참 피곤할 거 같다고... 그 말이 좀 뜬금 없게 느껴졌는지, 뒷말을 덧붙였다. 이모가 뭐라 하는 건 아닌데... 완벽한 성향의 사람들은 주변인들을 힘들게 한다고...

이 말을 들은 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평소 남의 안 좋은 모습을 들춰낸다거나 험담을 하는 녀석이 아니어서 그 충격은 더욱 컸다.

내 나름대로는 얼마나 저를 위해서 애를 썼는데... 내가 일하다 아무리 늦게 잠들어도 아침 일찍 나가는 녀석 굶겨 내보내지 않으려고, 한두 가지라도 새 반찬을 만들어서 밥을 먹여 학교를 보내고, 뒤꽁무니에 남겨진 것들을 내 딴엔 저 힘들까봐 잔소리하지 않고 치우고 다니고 그랬거늘... 지가 지 방 청소라도 한번 제대로 해본 적이 있던가. 내게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말도 없이 외박을 했을 때, 너무 염려가 돼서 그 새벽에 학교 주변 PC방이며 가게들을 돌며 미친 듯이 찾아헤매고, 그러고도 못 찾아 꼴딱 날밤을 지새우고, 다음 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들어왔을 때, 뭐라고 하면 집에 더 정을 붙이지 못할까봐, 없는 시간을 쪼개, 조용히 데리고 나가 영화를 보고 외식을 하고... 그러고는 한 마디... 늦으면 늦는다, 자고 들어오면 자고 들어온다, 전화는 하자... 그러고 넘기곤 했는데...  내 딴에는 저와 사느라 얼마나 노심초사 노력했는데... 나 때문에 피곤하고 힘들었단 말인가...

그렇게 쫀쫀하게 지난 일들까지 떠올리며 섭섭함을 곱씹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걸 진이(조카 이름)가 원했던 거야?'

내가 한 일들이, 조카가 원한 것들이 아니었다면, 결국 그건 내 성격 때문에, 내 만족을 위해서 한 거였다. 난 내 생활 방식에 조카를 맞추려고 했던 거였다.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아닌데... 자신의 생활 방식과 다른 내 생활 방식을 보면서, 더군다나 그 생활 방식에 맞추길 바라는 나를 보면서... 조카는 정말 피곤하고 힘들기도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카는 오히려 그때그때 내가 부탁하거나, 해야 한다고 당부하는 걸 어긴 적은 없었다. 아침에 깨울 때도, 두 번도 아니고 한 번 이름 부르면 벌떡 일어나 나오곤 했다. 그럼에도 난 어떤 것들은, 한 번 말한 것은 다시 말하지 않아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고수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내가 그동안 얼마나 조카에게 무언의 폭력을 행사하며 살았는지 깨달았다.

 

조카가 군대 가 있는 동안 내 생활 태도에 조금 변화가 왔다. 조금은 지저분하게 살게 되었달까...

군대를 제대하고 온 조카도 조금은 변해 있었다.

욕실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욕실을 쓰고 나올 때면 내 손이 따로 가지 않아도 될 만큼 말끔하게 정리를 하고 나왔다.

어느 날, 내가 말했다. 

"너.. 많이 변했다~"

"이모도 좀 변한 거 같은데요~"

그렇게 우리 둘은 서로의 생활 태도를 받아들이며 스며들고 있었다.

 

그런데 내게 그런 변화가 일어난 것은 조카의 따끔한 말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고양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다소가 처음 온 날, 집에 고양이 먹일 만한 게 아무 것도 없어, 다소를 데려오는 조카에게 우유를 사오라고 일렀다. 고양이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는 나는 새끼고양이라는 말을 듣고 다른 것보다 우유를 선택했던 것이다.

조카가 집에 도착해 꺼내놓은 고양이새끼는 생각보다 작았다. 배가 고픈 듯, 우유를 따서 그릇에 부어주자, 처음 보는 사람이 만지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할짝할짝거리며 잘도 먹었다. 처음 만져보는 다소의 털은 유난히 부드러웠다. 어렸을 때 고양이를 접하지 않았던 건 아니었지만, 새끼고양이 다소를 만지면서 느꼈던 감촉은 그때와는 또 다르게 다가왔다.

그렇게 우유를 할짝거리며 먹고 있는 손바닥 만한 고양이가 귀엽기도 했으나, 난 앞으로의 일들이 더 걱정이었다. 그게 무엇이 됐든, 한 생명이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공간의 너저분함이 얼마나 많은지 익히 알고 있기에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내가 신경쓰지 않도록 조카가 건사하기로 약속을 했으나,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 게 뻔한데... 이걸 어찌하나...

그런 우려를 몸소 확인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다음 날(이라고 하지만 날짜로는 그날), 첫 차로 어디를 가야 할 일이 있어서, 새벽에 일어나 욕실에 씻으러 가다 말고 나는 경악했다. 욕실 문 앞에 고양이의 토사물이 질펀하게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우유 때문에 더 그랬었겠다는 걸 생각한 것은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전날, 욕실 앞 빈 공간에 얄팍한 박스를 두고 수건을 깔아 마련한 잠자리에 고양이를 재웠는데, 새벽에 이눔이 욕실 문 앞에 구토를 해놓았던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비위가 무척 약했었다. 식사 때는 물론이고, 식사 때가 아니라도 지저분한 얘기를 들으면 헛구역질을 할 정도로 비위가 약했다.

난 창자 속까지 올라오는 듯한 헛구역질을 하며, 자고 있던 조카에게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야! 이거 치워!!"

자다 말고 놀라서 뛰쳐나온 조카는 군말없이 그 토사물들을 닦아 치웠다.

그렇게 조카가 다 치우고 다시 자러들어간 뒤에도 내 헛구역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다소의 구토가 그 한번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첫날 만큼의 양은 아니었으나 걸핏하면 토하곤 했다. 조카가 있을 때 토하면 물론 조카가 치웠지만, 조카가 집에 없는 시간에 토하면 어쩔 수 없이 내가 치워야만 했다. 그럴 때마다 난 욱~욱~ 헛구역질을 하며 치우고, 그러고나서도 한동안 속이 뒤집어져 뭘 먹는 게 힘들곤 했다.

처음엔 내가 너무 힘들어 다소가 왜 그런가는 생각할 여력도 없었다. 토해놓은 다소를 향해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멀찌감치 도망가 눈을 껌뻑거리며 바라보곤 했다. 그 모습을 보면 좀 안쓰럽기도...

그런데 횟수가 반복될수록 조금씩 속 미식거림이 둔해졌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서 '이 녀석이 어디 안 좋은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집에 오기 전 잠시 있던 곳이 밴드동아리라 시끄럽기 짝이없는 곳인데, 그런 시끄러운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것저것 주는 대로 아무 거나 먹어버릇해서 속이 안 좋아진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들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쯤의 시간이 더 흘렀을까...

난 고양이 토사물을 나무젓가락으로 헤집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고양이는 그루밍을 하는 동물이라서 간혹 헤어볼이라는 걸 토한다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 털뭉치가 있나 없나 확인하려고, 난 그렇게 징그럽던 고양이 토사물을 헤집고 있었던 것이다.

헛구역질 따윈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은 젓가락으로 헤집는 짓까지 하지 않아도, 딱 보면 안다. 헤어볼인지, 그냥 토한 것인지... 

 

"야! 이거 치워!!"라고 호들갑을 떨던 모습에서.. 꾸부정하게 엎드려 나무젓가락으로 고양이 토사물을 헤집어 보기까지...

그렇게 고양이란 존재가 까칠하고 예민했던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시작되었다.

<군대 가기 전 다소를 무릎에 앉히고 쓰다듬고 있는 조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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