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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여운

"고양이 데려가도 돼요?"


2003년 10월 22일 밤..
11시가 넘었는데 전화가 왔다.
내게 와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조카녀석이었다.
들어올 시간이 넘었는데 전화를 하는 것이 수상했다. 이 녀석.. 설마.. 더 늦는다는 건가??

"왜? 안 들어오고~"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내지른 소리..

내 목소리의 어감이 퉁명스럽게 느껴졌는지.. 잠깐의 망설임...
그리곤..

"저기.. 이모.. 고양이 데려가도 돼요?"

정말 뜬금없었다. 웬 고양이??

사연인즉슨..
누가 동아리방(밴드 동아리라 시끄럽기 짝이 없는 곳)에
고양이새끼 한 마리를 주워다놓은 지 좀 되었다는 것이다.

동아리 멤버들이 먹는 빵 같은 간식 종류를 주면서 키우는데..
밤이면 사람도 없고.. 날이 추워지니.. 고양이새끼를 혼자 놓아두기가 안쓰럽단다.
집에 데려갈까 하고.. 지 엄마(내 언니)에게 전화를 했는데.. 집이 비어 있을 때가 많으니 안 된다고 했단다.
조카도 나한테 와 있는 데다가 언니는 일 때문에 타지에 나가 있는 경우가 많으니
그런 반응이 나왔을 것이다.

거기까지는 이해가 됐다.
그런데.. 조카의 뒷말이.. 엄마가 이모한테 데려가라고 했단다. 이모가 동물 좋아한다고..;;

언니 말마따나 난 동물을 좋아하긴 했다.
예전에는 시골에서 너나 없이 개나 고양이를 키우곤 했으니까..
특히 어렸을 때 우리 개를 옆동네 아저씨가 예쁘다고.. 달라고 조른다고.. 줘버렸을 때는
식음을 전폐하고 울며 시위를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바깥에서 자유롭게 키울 때 말이지..
실내에서 키우는 것은 영~ 마뜩찮아 했었다. 
키우는 사람들에게 표현을 안 했을 뿐...

"이모 실내에서 동물 키우는 거 싫어해!!"

"그럼 어떡해요? 날은 점점 추워지고.. 얜 추운 데서 떠는데..."

그걸 나더러 물으면 어쩌라는 것이냐..이눔아야....ㅡ.ㅡ;;

그 해가 유독 추웠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날도 가을이지만.. 날이 많이 추웠었다.
그래서 조카는 고양이새끼를 혼자 두고 나오려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머스마 녀석이 정은 많아가지고..

'왜 하필 너냐', '모른 척 하라'는 말은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차마 나오지 않았다.
내 조카들이 '약자에게 손 내밀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주길..
늘 기도하고.. 바라는 마음 간절했는데..

이 상황에서 조카의 측은지심을 그렇게 무참히 짓밟을 수는 없었다!
인간 종족이 아니라고 해서.. 외면하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선뜻.. 데려오라는 대답이 나오지도 않았다.
실내에 동물이 들어온 이후의 일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똥오줌은 어찌하고.. 그 수많은 털들은 어찌할 것인가..

지금이야.. 고양이털 속에 파묻혀 살고.. 옷에 고양이털을 묻히고 나가도 아무렇지 않아할 뿐만 아니라..
먼지와 모래가 날려도 그런가부다...하고 쿨하게.. 아~~주 편안하게 그 속에서 뒹굴지만..
그때만 해도 한깔끔 떨었었다.
밤 새는 날이 허다할 정도로 일이 많으면서도..
욕실에 물 한방울 튀어 있는 꼴.. 집에 머리카락 한올 떨어져 있는 꼴을 못 보았었다.
오죽하면 조카가 '이모 집은 항상 새집 같다(속뜻:그래서 힘들다)'고..투덜댈 정도로..

게다가.. 일하고 있는데 방해를 한다든가..
쪽잠으로 버티는 일상에서 잠귀마저 예민한데.. 밤에 울기라도 하면??

당시에는..
'사랑으로 보살펴줄 수 있는가, 죽을 때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등의 
당연히 짚어보아야 하는 생각들은 떠오르지조차 않았다.

단지.. 성가실 일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등만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러면서.. 왜!! 키워줄 다른 사람을 찾아볼 생각 같은 건 하지 못했는지 참 의아한 일이다!!)

그래도.. 추위에 떤다는데...

한참 동안의 침묵 끝에...
결국은...

데려오라는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조카가 똥오줌 다 치우고 고양이새끼가 내 생활에 방해를 주지 않도록 건사한다는 조건 하에...
그리고.. 조카가 제 집으로 갈 때 데리고 가게 하면 될 거라는 계산도 함께...
(그러나 이 조건과 계산은 한낱 물거품이었으니... 얼마 안 가서..
조건은.. 조카가 하~얗게 까드셨고.. 계산은.. 내가 까~맣게 잊었다!!ㅎ)

그리하여...
2003년 10월 23일 자정이 조금 넘었을 무렵... 첫 대면을 하게 된 새끼고양이...



<그날의 사진은 아니다. 우리 다소 어렸을 때는 카메라가 없었는데..
이것은 들어온 지 한참 뒤 그나마 컴퓨터에 부착돼 있던 카메라로 찍어 어디에 올려놓았던 것이다.
카메라가 생기고 난 뒤 찍었던 사진들도 컴퓨터 바이러스로 인해 다 날려버려서..
옛날 사진은 귀하디 귀하다!ㅠ>

그렇게 나와 인연을 맺게 된 우리 다소...




<2005년 봄>



그 뒤.. 오늘까지.. 만 11년이 흐르는 동안...


우리 다소는.. 맘 따라쟁이가 되었다!!


세상에.. 이렇게 매력 넘치는 생명체가 있다니...*.*




내 조카가 "고양이 데려가도 돼요?"라고 물을 때...

내가 대답을 미루며.. 번민으로 망설일 때...

그때만 해도.. 진정.. 난 몰랐었다!!!

내가 고양이 여섯을 수발드는 다묘 집사가 되고..

바깥냥들까지 따라다니는 고양이바라기가 될 줄은...^^;;


다소야~~

냐옹이 식구가 늘어난 것은 다~ 네 매력 때문이니까..

맘 옆자리를 양보해야 한다고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았음 좋겠어~~ㅎ


그게 얼마 동안일지 모르겠으나...

너와 나에게 주어진 '함께 할' 시간 동안... 우리... 더더 행복하자~~

우리 다소~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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