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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여운

"누가 제일 예뻐요?"

 

 

전에 동료들이 집에 다녀간 적이 있다.

고양이를 여럿 키우는 집이라 자연스럽게 고양이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특히 그 중 한 분은

유학 중인 딸내미가 미국에서 기르다.. 한국에 다녀가고 그럴 때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본가에 데려다놓은 고양이 둘을 어거지로 떠맡아 키우게 되셨는데..

고양이라는 동물의 매력이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말귀를 잘 알아듣는지.. 새록새록 알아가는 재미에 빠지셔서..

고양이 양육담을 맛깔나게 풀어놓으셨다.

처음에는 방 하나를 고양이 영역으로 해두었다가.. 거실, 서재 등을 허락하고..

마지노선으로 생각하셨던 침실과, 침대까지 고양이 영역으로 점령당한 이야기며..

간식을 먹고 싶을 때 의사소통을 하는 거며..

둘이 놀 때 서로 관심을 끌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며 등등..

 

그렇게 고양이 이야기가 한창 진행될 무렵...

동학 1인이 우리 다씨냥들에 대해서 내게 물었다.

 

 

"여섯 중에서 누가 제일 예뻐요?"

 

 

이때 난 이렇게 대답했다.

 

누가 제일 예쁘다고 말하는 건 어렵다..

붙임성 많은 넘은 붙임성 많아 이쁘고.. 새침한 넘은 새침해서 이쁘고..

각기 색깔이 다를 뿐.. '제일'이라는 말을 붙이긴 어렵다고..

 

 

모두 돌아간 뒤.. 난 이 물음과 대답을 오래도록 되씹었다.

 

 

정말 난 한치도 다름없이 여섯을 똑같이 예뻐하는가?

만일 조금이라도 다르다면 누구를 더 예뻐하는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둘째 다람이가 들어온 직후에 만일 이런 물음을 받았다면..

오래 생각하지 않고 '다소'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때는 2년 6개월여를 기르던 첫정 다소에게 흠뻑 빠져있던 때였고..

로드킬당할 뻔했던 다람이를 구해오긴 했지만.. 다소만큼 정이 들기 전이었으니까..

 

그래서 다람이를 구조해오고도 첫째 다소의 신경을 거스를까 싶어

2개월령도 채 되지 않았던 아깽이를 며칠 베란다에 두었었다.

길에서 살면서 생겼을지도 모를 병의 잠복기 체크 기간 동안 격리해야 한다는 지식이 있어서 그리했던 것이 아니라..

첫째 다소가 너무 예민하게 굴었기 때문이다.

다람이에게 하악질하는 것은 물론이고..

내 손에서 다람이의 냄새가 조금이라도 나면 내게까지 하악질을 해댈 정도로 다소가 독이 올라있었다.

 

그때가 5월이었으니 그렇게 춥진 않을 때이고..

며칠 지나지 않아 안방, 그리고 침대까지 점령당했으며..

처음에 까칠하게 대하던 모습으로 치면 도저히 둘째를 들이기 어려울 듯하게 굴던 다소도..

너무나 쉽게 동생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그렇게 다소, 다람 둘이 함께 지내게 된 후에도..

초기에는..

다람이가 밥을 주는 족족 다 먹어버리고 자율급식을 하던 다소의 밥을 뺏어먹고..

다소가 좋아하던 자리들을 죄다 넘보고..

또 노는 시간에도 장난감을 다람이가 앞서 가로채기 때문에 점점 다소는 놀지 않고 다람이에게 다 양보하고..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바깥에서 어지간히 배를 곯았나보다.. 싶어서 다람이에게 먹을 걸 더 챙겨주고..

아직 아깽이니까..라는 생각에 다람이와 더 놀아주면서도..

첫째 다소가 자꾸 밀리고 다람이에게 양보만 하는 듯해서 속이 상하기도 했다.

 

아깽이였던 다람이는 내 무릎에 자주 올라와 있곤 했는데..

성묘가 된 이후로 무릎에 오지 않던 다소가 어느 날 슬그머니.. 무릎에 올라오는 걸 보면서..

아깽이라고 다람이에게 그렇게 양보만 하더니.. 그래도 좀 샘이 나긴 났었나보구나.. 싶어 짠하기도 했다.

 

그래도 다소에게 기우는 마음을 다스리면서.. 둘을 차별 없이 대하자 싶었으나..

마음 속 깊이 우러나는 정의 농도는 달랐다.

 

내가 다소와 다람이에게 애정의 차이를 결정적으로 보였던 때는

중성화수술 즈음이었다.

 

다소는 다람이 들어올 때까지 중성화수술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발정이 오면 한 일주일.. 열흘씩.. 울고..

그 울음소리가 새어나갈까 싶어 나 역시 밤을 꼴딱 새다시피 하면서도..

쉽게 수술 결정을 하기가 어려웠다.

낳게 하자니.. 새끼들을 다 키울 자신이 없었고..

수술을 하자니.. 말 못하는 동물이라고 해서 이 아이의 본능을 빼앗을 권리가 내게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발정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그렇게 발정이 와서 며칠씩 밤을 샐 때면..

'함께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수술을 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동물을 실내에서 키우기로 결정하는 순간.. 이 역시 내가 짊어지고 가야할 업보가 된 거지..' 싶어 잠 못 자는 고통을 감내했다.

(그때 다소의 울음을 달래기 위해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하면서 그 와중에 조금 효과를 본 것이 배마사지였다.ㅎ)

 

생각의 변화를 일으키고.. 수술 결정을 내린 것은 다람이를 들인 후였다.

다람이가 커서 발정이 왔는데..

이 무렵 둘을 데리고 본가에 한 보름 정도를 다녀와서 그 스트레스 때문인지..

발정난 것이 가라앉질 않고 둘 다 한 달 가량을 갔다.

둘이 함께 발정이 와서 서로 상승작용을 하는 것인지.. 집안 여기저기에 수컷들처럼 방사를 해대는가 하면..

무엇보다 둘 다 제대로 먹지를 못하고 말라갔다.

내 고통은 둘째 치고.. 이러다 둘 다 죽이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그때서야 인터넷부터 시작해 고양이에 대해 정보를 찾아보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 무지한 채.. 진짜 아무런 지식도 없이 키우던 걸 생각하면.. 지금까지 무사히 내 곁에 있어 준 것이 다행이다 싶을 정도..ㅠ)

 

공부를 하면서 '수술을 시키자'로 결론이 내려졌고..

결국 발정이 가라앉은 후 수술 예약을 하고 다소부터 수술을 했다.

 

그런데.. 수술 후 다소가 병원에서 얘기한 마취 풀릴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제대로 깨어나지를 못했다.

이때 축 늘어져있는 다소를 안고 난 전심전력을 다해 기도했다.

"내게 허락된 생명의 시간을 단축시켜서 이 아이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 주시옵소서.."

그때까지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했던 적은 가족들이 아플 때 빼곤 없었던 듯하다.

내 자신을 위해서는 그렇게 간절했던 적이 기억에 없다. 

기껏 동물 하나를 위해 이런 기도를 하다니...

이전 같으면 내 자신도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지금도 반려동물을 기르지 않는 사람들이 들으면 정신 나갔다는 소리를 들을 게 뻔한 그런 기도가 저절로 나왔다. 

 

그러면서 다람이를 들인 내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다람이를 들이지 않았다면.. 다소가 이 지경에 이르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다행하게도 다소는 무사히 깨어났다.

 

하지만..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마음 속 깊이 다람이의 자리가 다소와 별반 다르지 않게 되었고.. 

그러면서 난 두고두고

'그때의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그렇게 또 자책을 해야 했다.

한순간이나마 다람이를 들인 것에 대해 후회하는 마음을 먹었던 것이 다람이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기 때문이다.

 

다람이는 아깽이 때 곧잘 내 무릎에 올라오곤 했었지만..

성묘가 된 후에 오히려 내 손길을 제대로 받아들이기까지는 들어온 때부터 2년 여의 시간이 흘러야 했다.

그게 어쩌면 그때 내 애정의 깊이가 달라서..

마음으로 날 거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소가 워낙에 맘 따라쟁이여서 내 주위를 맴돌기도 하는 애였지만..

다람이는 다소가 좋아하는 다른 자리들은 다 넘보면서도..

잘 때 내 옆구리와, 내가 주로 작업을 하는 컴퓨터 모니터 위는 절대로 넘보지 않았다.

거기는 으레 다소 자리였다.

다람이는 잘 때 내 발치께에 기대 잤고,

다른 때는 다소 곁에 있다가도 다소가 모니터 위에 있으면 따로 다른 곳에 머물렀다.

그리고 다소가 내게 아침마다 배마사지를 받고 있으면 곁에 오지 않고 멀찌감치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곤 했다.

 

그 모습을 볼 때면 이제 내 마음이 미어졌다.

다람이 역시 조금 더 내게 치대도 좋으련만.. 넘지 못할 선처럼 느끼고 있는 듯해서 안쓰러웠다.

또 다람이가 겁 많은 아이가 된 것이 아깽이 때 애정을 온전히 받지 못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 자책이 되기도 했다.

(겁 많은 것은 다-행복이라를 보면서 그냥 개묘 차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서 이제 이 자책은 조금 덜어지기도 했지만..)

 

이 둘을 키우면서 지내왔던 이런 경험과 그로 인한 깨달음은..

이후 바깥냥들을 만나고.. 주리를 들이고.. 다-행복이라를 키울 때.. 

내 마음 자세를 그 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바꾸어놓았다.

 

그래서 지금은 "누가 더 예쁜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답이 쉽지 않다.

온갖 경우의 수를 대입해서 아무리 그 질문을 되씹고 되씹어도.. 쉽게 답이 내려지지 않는다.

 

살아온 세월의 길고 짧음으로 예쁜 것을 가린다면..

함께 산 세월이 11년 하고도 7개월이 되어가는 다소,

9년이 넘은 다람이..

그리고 이제 갓 2년이 넘은 다-행복이라 순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정의 깊이라는 것도 시간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아이로 인해 얼만큼 애간장을 태웠나가 정의 깊이를 달리하게 된다는 것도 주리 덕분에 알게 되었다.

또 다-행복이라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봐서 남다른 면이 있다.

붙임성으로 따진다면.. 다복, 다소, 다라, 다행, 다이, 다람이 될 것이다.

겁이 많아 더 마음이 쓰이는 순으로 따진다면.. 다람, 다라, 다행, 다이, 다복, 다소 순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기준을 적용해야 할까......

 

 

 

얼마 전 아고라 반동방 벼리엄마께서 같은 물음을 던지셨다.

 

'누가 제일 예쁘냐..'고..

여기에..

'안 보면 누가 제일 보고 싶냐..'는 물음을 덧붙이셨다.

 

그래서 한번 더 점검했다.

내가 밖에 나가 있을 때.. 우리 다씨냥들을 보고 싶다 느낄 때.. 누굴 먼저 떠올리나..

그런데.. 이 물음 역시 명쾌한 답변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보고 싶은 때를 가만히 떠올리면.. 다씨냥들 한 뭉텅이였다!

하나하나가 개별적으로 더 먼저 생각이 날 때는..

때때마다 컨디션이 좀 안 좋은 애가 있었다거나.. 좀 맥아리가 없는 애가 있을 경우에 그 애가 먼저 생각이 났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을 굴리고 굴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소와 다람이 때 애정의 깊이를 달리한 것에 대해

스스로 너무 호되게 자책을 해서..여섯 냥에 대한 애정의 깊이가 다른데도..

나 자신마저 내가 속이는 것은 아닐까..

.

.

.

 

 

 

 

2003년 8월 경 태어난 것으로 추정.. 같은 해 10월 23일부터 나와 함께 살기 시작한 다소..

 

겉으로는 까칠한 듯 보여도 속은 여려 터져서 하악질을 하면서도 죄다 양보하는 다소..

언제나 내 시선 범위 내에 머물 만큼 따라쟁이면서도

조금만 싫은 것을 할라치면 내게까지 하악질하는 다소..

늘 내 옆구리에 붙어자서 '나중에 이 아이가 없는 잠자리는 어떨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맥이 탁 풀리게 만드는 다소..

지금도 가장 먼저 마중을 나와 뽀뽀를 해주는 다소..

 

 

 

 

 

2006년 3~4월 경 태어난 것으로 추정.. 그해 5월 8일부터 나와 같이 살기 시작한 다람

 

여섯 중 가장 겁이 많아서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안쓰럽게 만드는 다람..

내 손이 가면 가까이 가기가 무섭게 먼저 머리를 들이밀고.. 골골송을 불러대면서도..

외따로 지내는 때가 많아 늘 마음이 쓰이게 하는 다람..

따로 자다가도 무서운 꿈을 꾸는지 울음 소리로 나를 부르고..

'엄마 여기 있어~' 라는 소리에 후다닥 내게로 뛰어오는 다람..

내가 혹 다쳐서 비명 소리가 들리거나 하면 가장 먼저 달려오는 다람..

 

 

 

 

 

 

그리고 2013년 4월 27일 태어날 때부터 나와 살아온 다-행복이라..

 

 

 

스스로 무릎에 올라오기 전에 내가 안으면 비집고 나가려 하면서도..

누군가를 예뻐할라치면 쏜살같이 와서 곁에서 알짱거리는 다행..

커다란 덩치에 안 어울리게 겁이 많지만.. 

또 한편으로는 카리스마 있게 행동하면서 듬직하게 동생들을 챙기는 다행..

놀고 싶을 때는 의자 아래 와 손잡이를 짚고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다행..

아직까지도 내 손바닥을 쫍쫍거리는 다행..

 

 

 

 

 

여섯 중 가장 품에 오랜 시간을 머물고.. 툭하면 안아달라 조르는 품냥이면서도..

다-행복이라 중 유일하게 간혹 내게 하악질도 하는 다복..

제가 하기 싫은 것을 할라치면 끝까지 도리질을 해서 애를 먹이면서도..

내가 힘들어하는 거 같으면 머리를 디밀고 애교를 부리는 다복.. 

안길 때도 아기처럼 안겨 가장 그윽하게 눈맞춤을 하는 다복..

 

 

 

 

 

 

천상 내숭 떠는 지지배처럼 새침하면서도..

스스로 무릎에 올라올 때면 곧바로 골골송을 부르는 허당 다이..

겉으로만 보면 냉정할 거 같지만.. 아직도 동생 다라에게 쫍쫍이를 하게 가슴을 내주는 다이..

내가 안으려 하면 도망을 갔다가도.. 슬그머니 다가와 스윽 다리 아래로 파고드는 다이..

쫍쫍이를 스스로의 가슴에 해서 그걸 바라보는 나의 마음을 짠하게 하는 다이..

 

 

 

 

 

놀 때도 소심하고 겁도 많아서.. 마음을 쓰이게 하면서도..

쓰담해달라고 조를 때는 가장 맹렬하게 울어대는 다라..

쓰담하다가 그만하려고 하면 제 어미 주리처럼 내 손을 끌어당기는 다라..

그렇게 쓰담할 때면 가장 열렬히 나를 그루밍해주는 다라..

아직도 이불에 꾹꾹이를 하고.. 제 언니냥 다이의 가슴을 쫍쫍이하는 막내 다라..

 

 

 

 

이들 중.. 누구를 제일 예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구를 제일 예쁘다고 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정말 모르겠다...

그래서 "누가 제일 예쁜가.." "안 보면 누가 제일 보고 싶은가"라는 이 물음은..

내게는 너무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이 중 누가 제일 예쁜가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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