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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여운

고양이와 나(4) - 기싸움

 

다소는 참 조용하고 얌전한 고양이였다. 뭔가를 뜯으려다가도 내가 조금 싫은 내색을 보이면 멈칫 물러나곤 했다(지금에 와서는 이것마저 마음에 걸리는 일이다). 가끔 먹은 걸 토해서, 비위가 약했던 나를 힘들게 하긴 했지만, 크게 말짓을 하지 않던 다소가 한 가지 나를 화나게 했던 것은 싱크대에 올라가는 버릇이었다. 그냥 올라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올라가서는 고무장갑을 물어뜯곤 했다

양이들이 어렸을 때는 잘근잘근 뭔가를 물기도 한다. 특히 이갈이를 할 때 이런 현상은 더욱 정점에 이른다. 둘째 다람이가 클 때는 상자 같은 것을 물어뜯었다. 다주리 새끼들인 다행, 다복, 다이, 다라는 이불을 물어뜯거나, 나를 물어뜯었다. 그 때문에 자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불도 성한 이불이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나는 다람이나 다-행복이라에게는 한번도 나무라거나 그랬던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때는 내가 이미 고양이의 습성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뭔 짓을 해도 예뻐보였으니까.

하지만, 이런 것을 몰랐고, 다소는 한갓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그때의 나는 다소가 싱크대에 올라가면 질겁을 했다. 동물이 어디 감히 싱크대에 발을 디딘단 말인가

그곳에 올라가는 순간에 목격하면, 그 버릇을 고치겠다고, 동물은 길들이기 나름이라고, 그 어린 것에게 싱크대 물을 뿌려서 베란다에 잠시 내놓는 벌을 주기도 했다. 싱크대에 올라가면 그렇게 싫어하는 물이 뿌려지는 거라는 것을 인식시키면 달라질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그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심해졌다.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하고 지쳐 돌아왔는데, 고무장갑이 갈기갈기 찢겨 바닥에 널려 있었다. 이날 난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 그 찢어진 장갑을 다소 눈 앞에 흔들며 큰 소리로 혼을 냈다. 그러자, 이 어린 새끼고양이가 내 목소리에 지지 않겠다는 듯 발악발악 울며 대들었다. 그 모습은 내 화를 더더욱 돋구었다. 어디 감히 쥐방울 만한 게 감히 주인(지금이야 집사를 자처하지만..)에게 이렇게 대든단 말인가. 난 결국 그 고무장갑으로 다소를 때리고야 말았다.

그런데 때려도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고무장갑을 들면 흠칫흠칫 놀라는 표정이 역력한데도 아득바득 대들었다. 그렇게 독이 오른 나와 어리디어린 새끼고양이 다소와의 기싸움은 한참 지속되었다 

그렇게 기싸움을 하던 어느 순간, 난 목놓아 울고 말았다. 발악발악 대드는 새끼고양이 다소의 그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두려우면서도, 강한 것에 밀려 뒤로 물러서지 않으려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대드는 그 모습은, 바로 내 어릴 적 모습과 판박이였다 

난 어릴 때 고집이 세기로 유명했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 것으로 혼이 날 때에는, 결코 잘못했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매를 아주 심하게 맞는 지경까지 가도 끝까지 잘못했다고 하지 않아서 결국은 매를 들었던 사람이 제풀에 꺾이곤 했다. 많이 맞고 자란 것도 아니었는데 어디서 그런 맷심이 나왔던 것인지. 난 자존심(그때는 그것을 자존심으로 여겼으니)을 꺾이는 것보다 육체적 아픔을 견디는 편을 택하곤 했다. 어릴 적에 찔벅찔벅 나를 건드리다 대드는 나에게 된통 혼이 난 동네 아저씨 한 분은, 나중에 그러더란다. 평소에 순하디 순하게 생겼더니 참 독하더라고 

예전 내가 직장 생활을 할 때, 우리 아버지 회갑연에 오신 직장 상사에게 아버지는 그런 말씀을 하셨다. 얘가 고집이 참 세다고, 그런데 고집값을 한다고. 

 

고집고집값’. 그랬다. 그것이 아무 것도 없는, 지극히 작디 작은 꼬마아이가 자신을 지키는 삶의 방식이었다. 한번씩 그런 일이 있고 나면, 누구도 함부로 나를 대하지 못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쉽게 보이지 않기 위해 나는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새끼고양이 다소에게서 난 어릴 때 나의 그런 모습을 본 것이다. 그래, 너도 뭔가 이러는 이유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그때 처음으로 다소가 그저 동물이 아닌, 생각을 가진 나와 동등한 존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다소와 나의 기싸움은 이후 두고두고 내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이 됐다. 다소가 자다가 움찔만 해도 혹시 내가 이때 손찌검을 해서 그러나.. 다소가 조금 앙칼진 면모를 보이기라도 하면 내가 본을 못 보여서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그리고, 다시는 두번 다시는 그 어떤 생명에게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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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나(0) - "왜 고양이야?"   http://babohj.tistory.com/251

고양이와 나(1) 대신 - "고양이 데려가도 돼요?"  http://babohj.tistory.com/entry/고양이-데려가도-돼요

고양이와 나(2) - "야! 이거 치워!!"  http://babohj.tistory.com/253

고양이와 나(3) - 있는 듯... 없는 듯... http://babohj.tistory.com/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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