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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여운

고양이와 나(3) - 있는 듯... 없는 듯...

 

다소를 집에 들인 뒤 며칠 동안은 사람 먹는 우유를 먹였었다. 새끼고양이여서 우유를 먹인 것이다. 그때문에 더 많이 토하기도 했던 듯... 고양이들은 유당 분해 요소가 적어 사람 먹는 우유를 먹이면 안 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며칠 뒤부터 한참 동안은 사람 먹는 밥에 생선살 같은 걸 비벼서 줬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시골에서 고양이를 키우는 집들이 대부분 그리했다. 시골에서는 살코기도 아니고 생선 대가리나 뼈 같은 것을 섞어주곤 했었다. 나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고양이를 위한 사료가 따로 있다는 것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고양이를 그렇게 특별 대접(?)하면서 키워야 한다는 생각 같은 것이 그때 내게는 아예 없었다.

 

하지만, 끼니마다 생선살을 비벼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나는 공부하는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와 대학원 등록금 등을 근근 마련하던 때였다. 여러 이유로 늦게 공부를 시작했고, 학부 때부터 고학을 했던 나는 참 많이 궁핍했었다. 다시 공부를 시작한 초반에 잠깐 도움을 준 이가 있었으나, 그 이후로는 쭈욱 홀로 학비와 생활비 등을 감당했다. 넉넉한 집안이 아니었고 부모님은 연로하셔서 기댈 수 없다 해도, 형제가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위로 언니 오빠가 무려 넷이나 있는데 한번도 어렵다는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간혹 도움을 주려는 것마저 거절하곤 했다. 산다는 것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거라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그때 나는 무슨 똥고집이었을까... 그때보다 형편이 나아진 지금은 오히려 누군가 도움을 주면 감사한 마음으로 받는다. 그래서 나보다 더 형편이 열악한 듯한 곳에 조금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는 그러한 마음의 여유마저 없이 버거운 홀로서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언젠가,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밤 늦게 집에 돌아오다가 어느 가게 쇼윈도에 기대고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었다. 그 유리벽 안에는 보랏빛 커피포트가 놓여 있었는데, 그게 너무나 예뻐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화려한 것을 그닥 좋아하지도 않던 난데, 그때는 그것이 왜 그리 예뻐 보였던 것인지... 가격표에는 7,000원이라는 숫자가 새겨 있었다. 그리 비싼 것도 아닌 가격이었다. 하지만, 그조차 맘 편하게 살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내겐 없었다. 그런 내 처지가 그때 조금은 서글펐던 듯... 다 내 스스로 선택한 거였지만...

 

다소를 들일 때는 그때보다는 조금 형편이 나아졌었지만, 그래도 긴축하고 또 긴축해야 간신히 버티는 것은 여전했었다. 그런 생활에서 끼니마다 생선을 올리는 것은 사치였다. 그렇다고 맨밥을 주자니, 그것은 또 내 마음에 걸렸다.

 

이래저래 난관에 봉착해 있던 때, 조카 먹일 찬거리들을 사기 위해 장을 보러 간 마트에서 우연히 고양이 사료를 발견했다. 아마도 집에 양이가 있으니 동물코너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던 듯하다. 개 사료는 몇 종류가 있었으나, 고양이 사료는 '캣차우'라는 것 딱 한 가지가 있었다. 나는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잠깐 갈등을 했으나, 결국 그 사료를 집어들었다. 그때 1Kg에 9,800원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사면 훨씬 저렴하다는 걸 발견했을 때의 그 배신감이란..ㅎ 알고 보니 '캣차우'는 고양이 사료들 중 가장 저가 사료에 속하는 것이기도 했다.

 

먹는 것은 그렇다 치고 화장실도 문제였다. 그때까지 고양이를 실내에서만 키워본 적이 없던 나는 고양이들의 배변을 어찌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다소를 데려온 조카가 고양이들은 모래에 용변을 본다는 소리를 했고, 그래서 밖에서 모래를 퍼날랐다. 그런데, 그 냄새란... 고양이 분뇨 냄새는 아주 고약하다. 지금이야 냄새 맡는 거마저 둔해졌고, 또 냄새가 좀 나도 그마저 그렇게 싫어하지 않게 되었지만, 처음에 그 냄새를 견디는 건 힘든 일이었다.

 

고양이 화장실 전용 모래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신세계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고양이 모래도 꽤나 비쌌다. 이래저래 다소가 들어온 뒤 지출이 늘어난 것이다.

 

신기한 것은, 절약이 몸에 밴 나였건만, 그렇게 늘어난 지출이 아깝게 느껴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다소가 없으면 안 된다거나, 딱히 교감을 많이 하는 그런 상태도 아니었다. 그냥, 보드라운 솜털을 지닌 귀엽고 예쁜 동물이었을 뿐. 처음 한동안은 다소가 내 곁에서 잠을 자는 것도 아니었고, 조카 방에서 잤다. 조카가 가끔 말했다. 다소가 가슴팍 위에 올라와 자면 느낌이 참 좋다고. 그러면, 그런가보다... 난 그냥 그렇게 그 말을 흘려듣곤 했다. 밤에는 거의 조카방에서 머물렀지만, 낮에는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음에도,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내게 고양이와 놀아주거나 그럴 시간 따위는 많지 않았다. 아주 잠깐씩 쓰담쓰담을 해주거나, 가끔 머리를 묶는 밴드를 던져주며 장난을 치는 정도.

 

꼬꼬마였던 새끼고양이 다소는, 그럼에도 사람을 성가시게 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잠깐 그렇게 놀다 내가 작업에 들어가면, 정말 쥐죽은 듯이 고요하게 어느 공간엔가 머물렀다. 있는 듯... 없는 듯... 가끔 어디에 있나 보면 조카 침대에 가서 옹송그리고 있거나, 의자 위 혹은 탁자 아래 같은 데서, 한줌밖에 되지 않는 몸을, 그마저 점유하는 것이 송구스럽기라도 한 것처럼 한껏 움크리고 잠들어 있곤 했다.

 

그런데 그런 새끼고양이 다소가 어쩐지 눈에 밟혔다. 고양이라는 동물이 저리 조용한 동물인가, 아니면 다소가 유난히 그런 것일까. 심지어 간혹 뭔가를 굴리며 혼자 장난을 칠 때마저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통통 튀는 자세를 해도 발소리도 크지 않았다. 발정이 왔을 때를 제외하면, 고양이라는 동물이 워낙에 조용하기도 하지만, 그때 다소가 유난히 조용했었다는 걸 둘째 다람이를 들인 뒤 알았다. 둘째 다람이가 들어오고도 소리가 별반 나지는 않았지만, 다람이는 다소보다는 조금 더 있는 티를 내었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다고, 어쩌면 그때 다소는 상황을 본능적으로 간파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스스로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한다는 충족감은 있었지만, 그래서, 그 충족감으로 간신히 버텨내고는 있었지만, 몇 년째 잠을 아껴가며 생활하던 차라,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다른 대상을 넉넉하게 품어안을 여유가 그때 내겐 별로 없었다. 다소가 구잡스럽거나 한 동물이었다면, 어쩌면 나는 고양이라는 동물에게 매력을 못 느꼈을 수도...

 

어쨌든, 늘 고요하게 머무는 다소를 보면서 나는 고양이라는 동물에게 조금은 마음이 끌렸던 듯하다. 따뜻한 체온을 가지고 있고, 실크처럼 부드러운 털 달린 동물이, 있는 듯.. 없는 듯.. 번잡스럽지 않게 같은 공간에 머문다는 사실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빠듯한 형편 속에서도 기꺼이 가외의 지출을 감수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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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와 나(0) - "왜 고양이야?"   http://babohj.tistory.com/251

 

고양이와 나(1) 대신 - "고양이 데려가도 돼요?"  http://babohj.tistory.com/entry/고양이-데려가도-돼요

 

고양이와 나(2) - "야! 이거 치워!!"  http://babohj.tistory.com/253